스무 살 베테랑 배우의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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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광고에서 크로와상을 입에 물고 방긋 웃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스무 살이란다. 연기경력만 17년 차로, 나이는 어리지만 중견 배우 축에 속한다. 성인 배우들 사이에서도 “향기 선생님”으로 통하고 있는 그는 제법 잘 자란 어른이 됐다. 아직은 “스무 살이 된 게 실감이 안 난다”고 하지만,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경험해보고 싶은 것도 많은 갓 스무 살, 호기심 많은 숙녀였다. 배우 김향기의 이야기다. 23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 한 카페에서 영화 ‘증인'(감독 이한) 개봉을 앞두고 있는 김향기를 만났다. 통통한 볼살에 동그란 두 눈을 보니 17년 전, 그가 대중에게 얼굴을 비췄던 광고가 절로 떠올랐다. 하지만 눈동자의 깊이만큼은 아주 깊었다. 영화계에서 ‘애어른’으로 통하는 김향기인 만큼 앳된 얼굴에서 성숙한 향기를 물씬 풍겼다. 김향기는 10대의 마지막을 영화 ‘증인’과 함께 했다. 극 중에서 그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지우 역을 맡아 열연했다. 보통 또래 배우들은 학원물이나 로맨스 코미디를 주로 하는데, 그는 의외의 선택을 했다. 오히려 로맨스물이 어색하단다. “정말 감사하게도 제 나이 또래에 알맞은 작품들이 잘 들어온 것 같아요. ‘어떤 작품을 하느냐’가 자신에게 중요한 거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이 아이가 잘 커나가고 있구나’를 느낄 수도 있고요. 좋은 작품과 좋은 기회를 통해서 천천히 성장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정말 행운이고, 복 받았다고 생각해요.”하지만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연기하긴 쉽지 않았을 터. 자신부터 장애에 대한 편견과 오해의 시선을 깨야 했을 테고, 또 다양한 케이스를 보면서 어디에 초점을 두어야할지 고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향기는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을 만나서 캐릭터를 연구했다고 밝혔다. “모든 사람이 다르듯, 자폐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의 성향도 다 달라요. 그 친구들은 청소년, 사춘기 시기에 자신들이 보통 사람과 조금은 다르다는 걸 느낀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마 더 혼란스러운 시기일 거라고 생각했죠. 그 시기에 어떻게 반응하고, 익혀나가는지가 중요하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지우가 소통하고, 마음을 여는 과정에 신경을 써서 연기했던 것 같아요.” 김향기는 톤부터 눈빛, 말투까지 모든 것을 바꿨다. 그는 “처음에 톤을 잡고 캐릭터를 만들어나갈 때 계산하면서 연기 했다. 그런데 지우는 그 상황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표현하는 건데, 제가 대본을 읽고 ‘계산적으로 표현하는 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부터는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때마다 나오는 감정으로 연기했다. 그게 더 잘 나왔고, 더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17년 차 베테랑 배우다운 답변이었다. 문득 김향기의 청소년 시절이 궁금했다. 사실 유아기부터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되기까지 다양한 작품으로 그의 성장 과정을 봐왔지만, 사람 김향기의 청소년기는 또 다른 모습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제가 한동네에 오래 살아서 다른 친구들과 똑같이 지냈어요. 친구들도 저를 ‘연예인이다’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사실 일과 병행하면 학교생활을 완벽히 다 누리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는데, 저는 다른 아역배우 친구들에 비해 누릴 거 많이 누렸다고 생각해요. 작품을 한다고 해도 1년에 영화 한 작품 하는 거라서 웬만하면 학교에서 재밌는 활동 다 한 것 같아요. 저는 행복하게 학교 생활했습니다.” 확실히 또래 배우와 달랐다. 아역배우의 티를 하루빨리 벗고 싶어 하는 친구들과 달리, 그는 급하지 않았다. 자기 나이에 맞춰 나아가는 데 만족했다. 또 하나 그에게서 차이점을 느낀 건, 아역배우들은 성인 배우들과 자주 어울린 탓에 아이 특유의 감성을 잃기 마련인데 김향기는 여전히 학교 친구들과 만나 노는 게 더 좋은 건강하게 자란 배우란 생각이 들었다. 김향기는 앞서 ‘신과 함께’ 시리즈로 청룡영화상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어린 나이에 큰 상을 받은 그는 “기쁘기보다 부담된다”고 말했다. “그 때 상 받았을 때 눈물이 나온 건 좋아서라기보다 그냥 너무 감사했어요. 저는 촬영을 하고 연기할 때, 결과를 생각하고 하는 게 아니라 시나리오 보고 선택하는 거니까요. 앞으로도 부담을 가지고 연기하고 싶진 않아요. 연기하는 데 안 좋은 작용을 미칠 수 있잖아요. 앞으로도 좋아하는 연기를 즐기면서 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아직 어리기도 하고요.” 그동안 그는 ‘영주’ ‘신과 함께’ ‘눈길’ ‘특별수사’ ‘우아한 거짓말’ 등 결핍이 있거나 상처가 있는 인물들을 주로 맡아 연기했다. 김향기의 필모그래피에서 로맨스라곤 찾아볼 수 없는데, 그런 그가 최근 tvN 2부작 드라마 ‘좋맛탱’에서 로맨스 연기를 펼쳤다. “어색해서 아직도 제대로 못 봤어요. 본방송 할 때는 해외여행 가 있어서 놓쳤는데, 방송을 볼 마음의 준비가 아직 안 됐어요. 드라마는 딱 스무 살 풋풋한 그 느낌을 최대한 살리려고 만들었는데, 정말 처음 해 본 연기였죠. 그런 연기는 해본 적이 없어서 어색하네요. 하하.” 김향기는 ‘증인’에서 정우성과 호흡을 맞췄다. 17년 전 한 광고에서 만났던 두 사람이 다시 만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는 “정우성 삼촌이 그리는 순호 삼촌의 모습이 궁금했다”고 말했다. “(정우성) 삼촌이 그동안 해왔던 역할과 달라서 너무 좋았어요. 그동안 강한 배역과 작품을 많이 하셨는데,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이런 톤의 영화나 캐릭터도 많이 해주셨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배려를 정말 많이 해주셔서 편안하게 작품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질문도 허투루 듣지 않고, 정성껏 대답했다. 앞서 배우 정우성과 이한 감독이 그의 말솜씨를 칭찬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실제 김향기는 평소 말이 없는 편이라고 했다. “제가 현장에서 선배 배우들한테 살갑게 다가가는 편이 아니에요. 이번에 ‘증인’ 할 때도 많은 선배 배우분들이 지켜보면서 많이 배려해주신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더 편하게 촬영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이제 갓 스무 살, 김향기는 실감이 안 난다면서도 하고 싶은 게 있다며 두 눈을 반짝였다. “그게 무엇이냐”고 물으니, 스무 살다운 답변이 돌아왔다. “운전면허를 빨리 따서 혼자 바다 여행 가보고 싶어요. 멀리는 못 갈 것 같아서 인천 정도 가보고 싶은데 무서운데도 꼭 가보고 싶어요. 그런데 지금은 운전면허학원 포화상태더라고요. 나중에 따면 꼭 도전해볼래요!”
출처 : [http://news.tf.co.kr/read/entertain/1743935.htm, 2019/01/25 05: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