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하기 때문에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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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정우성(46)에 대한 가장 강렬한 기억은 영화 ‘비트’가 아니었나 싶다. 그 영화를 본 건 아주 어린 시절이었는데, 오토바이를 타고 바람을 가르며 질주하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때 그 청춘을 대변하던 남자는 어느덧 중년 배우가 됐고, 22년이 흐른 지금 그는 청춘이 아닌 사람을 대변하는 배우가 됐다.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 한 카페에서 영화 ‘증인'(감독 이한) 개봉을 앞두고 있는 정우성을 만났다. 186cm 큰 키에 떡 벌어진 어깨, 여기에 감색 터틀넥 스웨터를 입은 그는 40대 중반이라고 하기엔 믿기지 않는 외모였다. 하지만 가까이 앉아 그를 마주하니, 눈가에 진 주름은 어느덧 지난 세월을 말하는 듯했다. 연륜과 여유가 한데 어우러져 그만의 카리스마를 풍겼다.정우성은 ‘증인’에서 유력한 살인 용의자의 변호사 순호 역을 맡았다. 순호는 퍽퍽한 현실에 힘겨워 출셋길에 눈이 멀지만, 결국 세상에 꼭 존재해야 할 존재를 바라보게 된다. 그동안 ‘인랑’ ‘강철비’ ‘더킹’ ‘아수라’ 등 강렬한 작품에 출연한 정우성은 오랜만에 인간적이고, 따뜻함이 묻어나 있는 캐릭터를 만나면서 ‘찰떡같이 소화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전에 맡았던 캐릭터들은 자유롭지 못했어요. 강해 보이려고 자기 속내를 감추다 보니까, 절제를 많이 했죠. 그런데 순호는 오히려 감정의 폭이 넓고, 다양해서 저에게는 더 강렬한 느낌이 들거든요. 이번 배역은 훨씬 더 즉흥적이고, 꾸밈없이 표현해서 감정의 여운이 더 길었던 것 같네요.” 한동안은 다소 거친 작품에 주로 출연했던 터라 ‘증인’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해 묻자, 그는 “다른 모습으로 보여줘야지 하는 생각으로 한 건 아니다”라며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받은 감정이 너무 좋아서 표현해보고 싶었고, 감정 표현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또 그 모습을 잘 봐주셨으면 해서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다뤘다. 정우성은 이 장애를 가진 소녀 지우(김향기 분)와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는 순호 역을 맡은 만큼, 장애를 이해하기 위한 공부를 했을지 궁금했다. “관련한 다큐멘터리나 자료를 봤는데, 그건 영화와 상관없었어요. ‘증인’을 위해서였어요. 제가 공부를 했다면 김향기 배우가 표현하는 지우를 만나기 전에 ‘지우가 이런 모습이겠구나’ 하는 선입견이 있었을 거예요. 그리고 보시는 관객을 위해서라도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공부를 할 생각도 안 했어요.” ‘단호박’ 같은 대답이었다. 그는 상대 배우인 김향기를 위해, 또 보는 관객을 위해 배려하며 순호 역을 준비했다. 그렇기 때문에 순호 역에 더 깊게 빠져들 수 있었다. 앞서 김향기가 “정우성 삼촌은 배려심이 참 많은 사람”이라고 말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날 인터뷰는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로 이어졌다. 정우성은 질문 하나하나에 깊은 생각과 고민 끝에 답하는 듯 천천히 입을 뗐다. 그래서 분위기 반전을 위해 뜬금없이 “때를 어떻게 벗기냐”는 질문을 던졌다. 극 중 순호는 로펌 대표로부터 ‘때가 좀 묻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듣는데, 실제 정우성은 앞선 질문에 “때가 묻으면 벗긴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이 답에 곧이어 질문을 했던 것.정우성은 이 물음에, 카페가 떠나가라 웃었다. 그러더니 “일단 때수건을 준비하시고요. 비누가 필요한데, 향은 취향대로 하시면 될 것 같아요”라고 재치있게 답해 인터뷰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러더니 이내 진지한 답변을 내놨다. “예를 들면 어떤 대상을 대할 때 내가 진지했는지, 존중을 했는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요. 하물며 문자를 주고받을 때도 내가 바르게 문자를 보냈나, 혹은 어떤 만남을 하고 난 다음에 그 대화 속에서 바른말을 했나 자꾸 되돌아보는 거죠. 오해를 풀려는 노력을 하고요.” “그런 방식이면 힘들지 않냐”고 물으니 그는 “나라는 자아를 객관화시키려는 노력”이라며 “기분이 내 거라고 해서 그걸 쫓아가다가는 나를 다치게 하기 때문에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자니 ‘증인’ 속 순호와 꼭 닮아 있는 듯 했다. 퍽퍽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지키려는 의지가 닮아 보였다. “순호랑 공통점이라고 하면, ‘노력해볼게’라고 말하는 자세가 비슷한 거 같아요. 무엇이든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노력이 압박으로, 무게로, 짐으로 어깨 위에 놓여있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순리대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느 정도 경력이 되거나 나이가 되면 자신과 경력이 모두인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들 있잖아요. 전 그런 착각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요.” 어느덧 46살 중년. 배우 생활한 지 26년 차에 접어들었다. 20대부터 지금까지 부지런히 배우 생활을 한 그는 최근 “20대를 되돌아보고 그때의 열정을 되찾으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20대 때는 영화를 통해서 많은 걸 이뤘고, 제법 빠른 시간 안에 영화를 대하는 가치관들이 성립됐던 것 같아요. 그런데 30대 때는 멍청했던 것 같아요. 30대가 되니까 작업을 대하는 방식이 구태의연해지고, 무뎌지더라고요. 지금 돌아보면 그랬어요. 40대가 되니까 ‘나 지금 뭐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번뜩 들면서 ‘다시 열심히 해봐야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20대를 돌아보면서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출처 : [http://news.tf.co.kr/read/entertain/1744271.htm, 2019/01/30 05: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