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을 만났을 때 ‘사바하’

gAnhZsB_o

시간이 참 빨리도 흘렀다. 지난해 6월 영화 ‘변산’으로 만난 배우 박정민을 1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만났다. 이렇게 자주 만날 수 있는 건 그가 그만큼 쉴 틈 없이 작품활동을 한다는 방증이 될 수도 있겠다. 당시 박정민을 만나고선 ‘참 무미건조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작품에선 그렇게 분노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실제 만난 그는 무엇을 얘기하든 크게 동요하지 않았고, 겸손하다 못해 자신을 한없이 낮췄다. 반쯤 뜬 눈으로 말을 툭툭 내뱉지만, 그 안에서 자기 생각을, 진심을 가감 없이 전달했다. 이 모습들은 박정민만의 색깔이었다. 이후 영화 ‘사바하’로 오랜만에 만난 그는 여전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뭔가 모를 밝은 기운이었다. 18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 한 카페에서 영화 ‘사바하’에 출연한 박정민을 만났다. 그는 이번 영화에 꽤 만족한 듯했다. “‘사바하’를 찍으면서 팬이 됐다”며 “연출부 친구들한테 ‘나 지금 너무 영화 찍는 것 같다’ ‘너무 좋다’고 자주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봐온 박정민은 다른 배우들에 비해 유독 더 작품에 대한 만족감이 낮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신을 항상 경계했고, 쉽게 만족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달리 느꼈다는 게 신선하게 느껴졌다. “원래 추리물? 미스터리? 같은 장르를 하고 싶었어요. 열광했던 영화를 찍은 느낌이죠. 이 영화는 참 신기한 게 배우들이 연기할 게 별로 없어요. 감독님이 그린 그림에 맞춰가면 되거든요. 배우가 괜히 안 좋은 아이디어를 내서 긴장감을 떨어트리는 것보다 감독님에 맞춰서 잘 가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연기할 때 불편하기도 해요. 그 불편함을 감수하고 연기했을 때 화면을 보면 훨씬 좋더라고요. 그때 느꼈어요. ‘영화는 이런 맛이지’ 하고요.” 박정민은 어린 시절 영화 ‘세븐’ ‘다빈치코드’ ‘유주얼 서스펙트’ ‘메멘토’ 등의 영화를 즐겨봤다고 했다. 배우를 꿈꾸면서 ‘이런 영화를 할 수 있을까?’ 상상했던 그는 마침내 ‘사바하’를 만났다. “영화 ‘변산’ 촬영이 끝난 다음 날에 ‘사바하’ 촬영을 들어가는 거였어요. 당시에 너무 고돼서 집에서 기어 다녔는데, 그 상태로 ‘사바하’에 들어간 거죠. 한 3회차 정도 찍은 날, 감독님이 촬영하다 말고 저를 부르셨어요. ‘일주일 정도 시간 드릴 테니까 무조건 따뜻한 나라 다녀오세요’라고 말하더라고요. 감독님이 보시기에도 제 상태가 안 좋았겠죠. 바로 베트남으로 날아가서 캐릭터 공부도 하고, 꿀 같은 휴식을 맞봤죠. 재정비하고 들어갈 수 있어서 아주 다행이었어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요.” 앞서 박정민은 ‘사바하’에서 연기할 게 별로 없다고는 했지만, 그가 맡은 정비공 나한 역은 쉽지 않은 배역이다. 때로는 절제하고, 때로는 감정을 휘몰아쳤다. 아울러 A4 1장 분량의 진언(석가의 깨달음이나 서원을 나타내는 말)도 외워야 했다.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넣어야 하는 힘든 작품이었다. “극한으로 몰아넣어야 하지만 진언을 외우는 것 말고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어요. 촬영장 가는 게 즐거울 정도였으니까요. 진언을 외우는 데만 3~4개월이 걸렸는데 정말 많이 힘들었죠. 그러고 보니 저는 작품마다 해야 할 게 있었어요. 피아노, 랩, 카드 등 좋은 취미활동이 생겼지만 다 까먹었네요. 하하.”박정민은 전작 ‘변산’에서는 랩을,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는 피아노를 쳤다. 그리고 차기작 ‘타짜3’에서는 타짜로 변신한다. “영화로 진정한 예술가로 거듭나는 거냐”고 묻자 그는 “자본주의에 타협하는 배우”라며 웃었다. 최근 박정민은 개인적인 취미생활로 목공예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기르고 있는 진돗개 두 마리를 위해 큰 집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박정민은 “목공예를 할 때만큼은 잡생각이 들지 않고 시간이 잘 가는 것 같다”며 자신만의 스트레스 해소 비법을 밝혔다. 지난번 ‘변산’ 인터뷰에서 만났을 때 그는 “스트레스를 풀려고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 그때 뿐이지 않냐”고 했던 말이 기억났다. 박정민에게 이 말을 다시금 하니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며 웃었다. “행복이라는 감정은 순간적으로 느끼는 거기 때문에 좋았다가 사그라들잖아요. 행복할 때와 행복하지 않을 때로 나뉘겠죠. 그렇게 보면 요즘엔 행복함을 꽤 느끼는 것 같아요. 현장 가서 사람들이랑 있을 때도 좋고, 집에서 그냥 있을 때도 좋고. 가끔 ‘괜찮은데?’ 싶어요. 사실 예전에는 사소한 것에 행복한 걸 못 찾았어요.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니까. 그런데 요즘은 행복함을 느끼고 있어요. 행복합니다.”박정민은 작품마다 다른 얼굴로 관객과 만난다. 그때마다 캐릭터와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하며 작품의 몰입도를 높인다. 그는 “의도한 건 아니지만 다른 캐릭터를 할 수 있어서 좋다. 그런데 제가 만들어놓은 이미지가 없어서 더 그렇게 보일 것”이라고 겸손한 답변을 내놨다. 2011년 영화 ‘파수꾼’으로 데뷔한 박정민은 독립영화, 저예산 영화 등을 거쳐 지금은 상업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이제 많은 곳에서 그를 찾게 된 것이다. 데뷔 9년 차. 그에게 “연기하면서 무엇이 즐겁냐”고 물었다. “옛날 같았으면 ‘많은 사람의 인생을 살아볼 수 있어서’가 대답이었을 텐데, 지금은 그건 아닌 것 같고요. 하하. 전 영화를 정말 좋아했던 학생이었고, 청년이었어요.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과를 갔지만 감독할 재주가 없다는 걸 일찍 깨닫고 연기로 전향했죠.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 같아요. 연기하면서 좋은 건 제가 영화를 만드는 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특히 요즘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 중에서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된 게 신나고요. 좋은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 과정들, 그 일원이 되는 게 재밌고 즐겁습니다.”
출처 : [http://news.tf.co.kr/read/entertain/1746160.htm, 2019/02/22 05: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