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이 ‘우상’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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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종잡을 수 없다. ‘예상대로 흘러가겠지’라고 하면 예상을 벗어난다. 스크린이나 TV 브라운관에서 보던 그보다 실제로 만난 그는 더 다양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때론 교수님처럼, 때론 옆집 아저씨처럼, 때론 친구처럼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인간적인 면모를 마음껏 드러냈다. 배우 한석규의 이야기다.중저음의 목소리, 느긋한 말투. 묘하게 사람을 이끈다. 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한석규는 오는 20일 개봉을 앞둔 영화 ‘우상'(감독 이수진)에 대해 천천히 입을 뗐다.”‘우상’은 시나리오 자체가 인상적이었어요. 그 분위기에 압도된다는 느낌이랄까요. 읽고 나서 정곡에 찔렸다는 표현을 했죠. 이야기 주제가 참 인상적이었어요. 또 그걸 풀어내는 은유들. 처음 그 시나리오를 접했을 때 아주 고맙다고 생각했죠. 보통은 연기자가 선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연기자도 선택당하는 입장이거든요. 시나리오를 봤을 때 참 정성껏 썼고, 의도가 좋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수진 감독한테 고마웠죠.”하지만 한석규에게도 ‘우상’은 모험이었다. 대중성과 동 떨어진 주제와 이야기를 갖고 있어 투자 받기 쉽지 않은 작품이어서다. 그 역시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예상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석규는 이 작품이 꼭 마음에 들었다.”관객분들이 ‘우상’을 봤을 떄 이수진이라는 연출자가 왜 이런 걸 썼나. 바보가 아닌 이상 투자받기도 힘든데 말이죠. 하지만 현재 사회 속의 우리들의 모습을 그리고 싶다는 의도였을 거예요. 그래서 ‘해봅시다’ 했죠. 진심이 통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요.”그럼에도 한석규가 ‘우상’의 구명회 역을 맡은 것은 의외였다. 구명회는 극 중 비겁하기 짝이 없는 인물이다. 구명회는 차기 도지사 후보에 거론 될 정도로 존경과 신망이 두터운 도의원. 하지만 아들이 교통사고에 연루되면서 벼랑 끝에 몰리게 되고,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악행을 이어나간다. 한석규는 구명회의 비겁함 때문에 작품을 선택했다고 했다.”비겁한 인간을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제 이미지와 한석규라는 연기자. 변신 때문은 아니지만, 저의 그런 모습을 통해 우리 관객들이 자신의 모습을 한 번 생각해주시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었죠.”그러고 보면 한석규가 지금까지 부드러운 배역만 한 건 아니었다. ‘프리즌’ ‘백야행’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구타유발자들’ ‘음란서생’ ‘주홍글씨’ ‘텔 미 썸딩’ 등 많은 작품에서 강렬한 연기를 펼쳤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엔 ‘8월의 크리스마스’ 속 변두리 사진관에서 선한 인상을 짓고 있는 정원이 깊게 박혀 있다. 그리고 그는 많은 이들의 ‘우상’이 됐다.인터뷰 내내 한석규는 작품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떠오르는 추억에 미소를 짓기도 하고, 고민도 하며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다. 문득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물으니 “여러분이 오랫동안 저를 봐오시지 않았느냐”며 “그 모습이 저라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고 답했다.영화는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우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석규에게 ‘우상’은 어떤 존재이고, 누구일까.”저한테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사람은 어머니예요. 생각하면 할수록 더 그렇게 느끼죠. 어머니는 제가 6살 때부터 극장에 데리고 다니셨죠. 제가 이야기하는 어투, 풍부한 감수성 등 대부분이 어머니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죠. 아버지, 형들도 있지만 어머니가 가장 강력하죠.”데뷔 30년 차에 접어든 한석규는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고 했다.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었다는 그다. 베테랑 배우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말은 신선하게 다가왔다.”처음에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연기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연기는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중요하더라고요. 결국은 내 리액션이 액션인 거죠. 시간이 걸렸어요. 일도 그럴 진데 사는 것도 반응하면서 살아간다고 생각해요. 같은 액션이라도 반응이 다르니까요. 이번에 함께 출연한 설경구, 천우희도 존경심이 느껴진다랄까요. 존중해 줄 수 있을 정도의 동료 연기자였어요. 그 친구들이 왜 연기하는지를 알겠더라고요.”
출처 : [http://news.tf.co.kr/read/entertain/1748182.htm, 2019/03/16 14:00:03]